그들은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그 우리 속에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부터 우리가 아닌 존재가 되었을까. 그들을 중국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왜 언제 중국에 가서 중국사람이 되었을까. 우리 동포이기도 하고, 재중한인이기도 하고, 中華민족의 일원이기도 한 중국의 조선족.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과 태도는 이들이 남한사회라는 새로운 지역에서 적응하고 정착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탈북자들에 대한한국 정부, 민간단체, 일반시민들의 시각이 어떻게 정립되는가에 따라 그들이 남한사회에서 정착하고 적응을 이루는 동안 제공될 물질적, 정서적 지원의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사회에서는 이방인일 뿐이다. 또한 점점 많은 조선족들이 자신을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한국을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잠시 머무는 나라로 여기고, 만약 한국과 중국이 축구를 한다면 당연히 중국을 응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80%가량의 한
중국 및 북한의 갈등 그리고 이들과의 관계에 조심스럽게 대응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어 행동하는가와 문제에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Ⅲ. 탈북 여성 인권에 대한 국제기구의 활동
국제기구는 중국 내 북한이탈주민의 인권보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각적
민족들과 함께 가혹한 분리•차별정책에 휘말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됨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팽개쳐짐. 당시 고려인 수=17만 5000여 명, 이 가운데 1만 1000여 명 도중에 사망
- 그러나 고려인들은 강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개척, 한인집단농장
중국에는 적어도 10만명의 탈북자가 숨어 지내고 있고 중국당국에 의해 지난 한 해 동안 강제로 북송된 탈북자의 숫자는 8000여 명에 이른다고 주장하는등 탈북자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심각성이 더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 탈북자들은 강제송환의 위협과 불안정한 신분으로 인한 인권침해을 받으
중국의 정부기관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2만 명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 정부에서도 3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탈북자들에 대하여 중국과 러시아는 인도주의적 의무마저 외면한 채 가혹한 처벌이 기다리는 북한으로 강제송환 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 정부에서도 이들 탈북자들의
Ⅰ. 머 리 말
조선족의 중국이주는 17세기초로 소급된다(추영춘, 4-13). 조선족의 간도유입은 봉금령(1677년 발령)이후 만주족 이외의 민족의 만주이주는 금해졌지만 1870년에 이미 28개 조선족 마을이 있었으며 1881년 봉금령 철폐이후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었다(김규방 외, 7-18). 일제의 잔혹한 수탈
문제제기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소위 서구선진국들과의 연계론이나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에 편승한 한국 국회의 대북인권결의안 추진 움직임은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이러한 외교적 방안들은 그동안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종합
대한 이해
1. 개념
북한이탈주민은 북한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체제를 견디지 못하고 중국이나 제 3국을 통해 남한으로 오게 된 사람들을 말하며, 탈북 주민이라고도 말한다.
2. 유형
탈북자 유형은 체류기간과 북한으로의 귀환의지에 따라서 단기체류자, 장기체류자, 탈북자로 구분